2008년 8월 4일 월요일

[서평] 조선 왕 독살사건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에 이어 이덕일의 책을 두번째로 읽다. 한국사는 "입시국사"에 질려서인지 대학때도 잘 손이 가지 않았던 분야다. 기껏 해전사, 다현사로 대표되는 "세미나 커리"를 통해 해방공간과 그 이후 엄혹한 시대를 맛만 보았지만 그것은 이야기로서의 역사라기보다는 추상화된 이념이 주인 "분노로서의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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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책을 읽을때마다 탁월한 옛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산 드라마에서 시작한 나의 관심은 그의 정조에 관한 책을 단숨에 독파할 수 있었는데 그 관심은 다름 아닌 드라마에서 그려진 정조와 당시의 시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함이었다.

제목부터 무시무시한 이 책은 600년 동안 이어온 조선왕조에서 미심쩍게 죽음을 당한 임금들의 이야기이다. 군주와 신하의 구분이 엄격한 왕조시대에 위계의 최정점에 있는 국왕이 자연사가 아니라 타살을 당햇다면 분명 가해세력이 죽음을 무릎쓰고 참담한 일을 실행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있을터. 따라서 이 책에 그려진 죽음은 조선시대 가장 치열한 정치투쟁에 대한 지형도이다.

그 정치투쟁의 이면에는 사림이 있다. 조선은 군왕의 나라이기 이전에 사대부의 나라였다. 이를 대표하는 사림은 점점 동일한 정치지향을 갖는 "당"으로 진화함으로써 서인/남인/노론/소론 등으로 분화되었고 일부 당은 나라의 안위보다 일신과 가문의 광영을 우선시하였다. (아마 대다수가 그랬을지도.. 당쟁에 관해서는 조금 더 공부해볼 필요를 느낀다) 단적으로 병자호란 이후 당시 국본인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갈때, 청이 고위관직에 있는 자제도 볼모로 요구하였으나 모든 고관대작들이 사직소를 던지고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단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없는 전통이란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며 관통하는 생각은  "만약.."이라는 상상이었다. 청나라에 볼모로 9년동안 머무는 동안 격변하는 세계정세를 체험하고 천주교를 접한 소현세자가 왕위에 올라 주자의 성리학밖에 모르는 당시 조선의 사상계를 뒤집었다면? 조선왕 중 가장 개혁적인 정조가 송시열의 유령(노론)을 제거하고 정치개혁을 단행했더라면? 그래서 정약용, 박제가 등 당시의 개혁사상가들이 보다 근본적인 개혁을 주도했더라면? 고종이 해외로 망명을 하여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가 국제적으로 불인정을 받고 조선의 민중들이 보다 항일투쟁을 더 적극적으로 시작했더라면?

어찌보면 당시에 드러난 표면적 정치갈등은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하등 더할 것도 못할 것도 없어 보인다. 쇠고기 협상은 노무현이 안치우고 간 똥인지? 아니면 MB가 미국에 줄 선물로 무리수를 둔 것인지?, 대통령 기록물 사본을 가져간 노무현이 실정법 위반인지 아닌지? 이런 갈등이 조선시대에 벌어진 국왕의 정통성 문제 (현종의 예송논쟁)나 왕위를 뺐긴 자와 그 세력들의 처참한 죽음 (날 때부터 남인의 딱지가 붙어 허수아비 노릇을 하다 어이없이 죽은 경종)보다 나을 것이 무언인지.

책을 덮으면서 그 어떤 소설보다 실제의 역사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다는게 놀랍다. 이 참에 이덕일 시리즈를 다 섭렵하며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지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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