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8일 일요일

[서평]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처음 세계화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던 책은 독일 저널리스트들이 썼던 "세계화의 덫"이었다. IMF 구제금융을 겪었던 1998년. 나는 당장 눈앞에 취업을 걱정해야 했던 대학 4학년 생이었으나, 한국 사회와 당시 개도국들이 겪고 있었던 전대미문의 경제위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그 원인을 알고 싶었다. 당시에 내가 기억하기로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해서 대중적으로 널리 읽힌 책이 바로 "세계화의 덫"이었다. 20:80의 사회, 시장에 무력한 국가, 금융자본의 독재 등 지금은 널리 알려진 개념들을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출간된지 1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지금도 다수의 대학의 교양도서로 읽힌다고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한듯 하다)

그 이후에 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기업이라는 조직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환경하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생존의 고민을 주로 해 왔었다. 수많은 경영전략과 마케팅 책을 접하였고, 가끔 했던 곁눈질도 미국 주류 지식인들의 시각이었다. 특히 책을 냈다 하면 항상 베스트셀러가 되는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는 평평하다" 류는 세계화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현상을 잘 설명한 르포집에 더 가깝다. 미국인들의 세무신고를 인도의 회계사들에게 오프쇼어링을 하는 예를 들면서 미국 젊은 세대들에게 "지금 더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너희들의 일자리는 없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는 이 책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더 심화시킨 인류의 매우 심각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앞의 책들과 다르다. 기아 문제. 80년대 초반 아프리카의 기근으로 대규모 기아가 발생했을 때 전세계가 "We are the world"를 부르며 지원을 했던게 벌써 20년이 훨씬 지났다. 그런데 지금도 왠 기아? 저자에 따르면 UN이 최근에 발표한 인류의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는 전쟁종식도, AIDS퇴치도 아닌 바로 기아의 근절이다. 

 
저자는 국제법 전문가 출신으로 UN에서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현장의 치열한 경험과 국제정치경제의 작동원리에 대한 이론적인 배경이 더해져 "기아"라는, 인류가 진보하며 당연히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문제가 왜 아직도 해결되고 있지 않은지를 딸아이와 얘기하듯이 매우 쉽게 쓰여졌다. 그럼 기아의 주범은 누구인가?

첫째, 식량의 상품화가 심화되었다.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 중 자급자족을 위한 곡물 이외에 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곡물의 비중이 커졌다. 세계적으로 도시화로 인하여 농지와 농민의 수가 줄어들고, 환경파괴로 인한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자영농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옥수수와 밀의 경우에 가축의 사료와 바이오 에탄올의 원료로 사용되면서 한정된 공급에 비해 가격이 많이 올랐다. 따라서, 어떠한 국가가 자급자족을 하고 있다고 해도,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기근으로 식량을 외부에서 사와야 할 경우 예전보다 더 높은 가격을 치뤄야 한다. (여기에는 UN같은 국제기구도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식량, 천연자원등에 투기자본이 몰리면서 이러한 가격 상승요인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펀드를 가입할때를 생각해보라. ** 아그리 펀드, ** 천연자원 펀드등의 상품이 널려있지 않은가.

둘째, 광범위하지만 "인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보다 정치권력의 유지가 더 중요한" 일부 정치세력이다. 책을 읽다가 십수년 전 감동적으로 봤던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가 다시 생각났다. 책에 따르면 1970년대 초에 칠레에 세워진 민주정권인 아옌데 정권이 내세운 공약 중 하나가 영유아들에게 분유를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칠레는 영유아들이 기아로 인한 사망률이 매우 높았고 이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아주 시급한 과제로 인식을 했던 것이다. 관련한 내용을 인용하면, 

이 공약을 내건 아옌데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이 문제에 가장 곤란함을 느꼈던 것이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였다는 점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커피와 우유를 주품목으로 하는 네슬레에게 칠레 정부가 분유를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칠레에서의 성공사례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로 번져갈 경우에는 더욱 큰 골칫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12면) 

이것 때문에 미국이 피노체트를 움직여 쿠데타를 했다는 건 비약이겠지만, 당시 남미에서 최초로 세워진 민주정권이 추진하려는 정책들이 다국적 기업과 미국을 위시한 주요 선진국의 이해에 반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셋째, "맬더스의 법칙"을 근간으로 한 우리들의 반인간적인 의식. 18세기의 유령이 지금도 떠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선진국 사람들의 의식속에는 기아가 지구상의 인구를 줄여주는 자연스러운 수단이라는 생각이 있다고 한다. 결국 가난하거나 열등한 사람 (인종)의 기아문제는 어쩔 수 없다는 소극적인 회피를 넘어, 적극적인 방기를 유발한다. 전세계적인 이슈 중에서 기아 문제가 환경, 평화, 인권등의 문제에 비해 다소 소홀하게 취급된는 건 바로 이런 의식때문이 아닐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도 별반 구체적인 대안제시는 미흡하다는 점이다. 세계를 비참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을 비판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라는 다소 원론적인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식량권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인권으로서, (망명자의 피보호권처럼) 새로운 국제 법규로서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에서와 같이 국제법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으로 "식량권"을 도입하자는 주장은 새롭다. 

저자의 책이 최근에 또 다시 번역되어서 나왔는데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서평을 보니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해서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한 듯 싶다. 

이 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석훈, 주경복 두 사람의 글이다. 우석훈은 88만원 세대, 괴물의 탄생 등 최근 재미있고 균형잡힌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학자인데 이 책의 전반적인 해제와 추천글을 적었다. 주경복은 올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낙선한 이다. 나는 서울거주가 아니라 크게 관심이 없었고 다만 공정택은 안 됐으면..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 끝머리에서 주경복은 세계화에 대해서 단순명료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뉴라이트니 전교조니 누가 누구를 지원했느냐를 떠나서, 그의 글을 보면 적어도 지금의 공정택 같이 아무 개념없고, 청와대에서 시키는대로 돌격만 하고, 아이들과 선생님을 절망으로 빠트리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한다. 공정택 찍으신 분들.. 후회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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